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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代)를 이어 전해지는 인연
이남일  (Homepage) 2019-08-23 05:12:54, 조회 : 114, 추천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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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代)를 이어 전해지는 인연

인연의 끈, 핸드폰
요즘 확인 없이 집을 방문했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이때 소재 확인을 위해 주저 없이 꺼내드는 것이 핸드폰이다. 출타 중인 사람은 대부분 핸드폰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전화기를 잘 받지 않는 사람에게 짜증내는 말이 있다. “왜 넌 집을 비우고 그래.”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나오니 전화기가 집인 셈이다. 그러니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집을 잃어버린 것이고,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면 주소를 잃어버린 것이 된다. 전화번호가 바뀐 것은 이사 간 경우고, 다른 사람이 받으면 이사 온 사람이다.
오랜만에 전화하는 친구가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너 왜 전화 한번 없냐?” 멋쩍은 무관심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럼 너는 어떻고?” 바쁘게 사는 건 마찬가지다. 같은 입장에서 누굴 탓하겠는가. 둘 다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아 돌아보면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을 보곤 한다. 전화하는 소리다. 요즘 사람들은 핸드폰을 쥐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전파의 끈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우리는 광통신망 보급 율 1위 국가에서 살고 있다. 정보를 신속하게 교류하고, 공유하고, 교감하는 것이야 말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가히 축복받는 일이다. 핸드폰은 어디서나 서로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다. 전화 음을 따라가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는 끈을 잡고 서로의 마음을 본다. 핸드폰만큼이나 이어지는 끈은 또 있다 바로 혈연이다.

혈연은 운명적 관계
기억이 가물한 먼 친척이 문득 부음을 전해온다. 서둘러 정제하고 문상 채비를 한다. 친소(親疏)와는 상관없이 애경사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대개 친척들이다. 혈연의 이유만으로 행사를 챙기는 것은 도리이자 의무로 여긴다.
만남은 우연인 것 같지만 필연으로 이어져 있다. 가족으로 태어난 인연은 운명이 된다. 그래서 가족은 평생을 지고 가야할 걱정이자 짐이다. 전생에서든 이승에서든 살기 위해 빚을 지고,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간다.
자식 간에도 전생에 진 빚을 받으러 온 자식이 있는가 하면, 갚으러 온 자식이 있다고 한다. 어떤 부모는 호강을 하고, 어떤 부모는 희생을 한다. 호강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효도의 기회를 주고, 희생하는 부모는 부모에게 사랑의 기회를 준다. 가족이 잘되면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도 어쩌면 걱정을 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겠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피가 섞이면 유대관계가 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혈연의 정이 정서적으로 고착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켜주는 나라와 낳고 길러주는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 의무이자 도리라고 강조하는 충효사상과 같다. 이는 대대로 이어져야하는 생존의 요건이기도 하다.

혈연적 유대관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의미의 관계가 그물처럼 얽히고 이어진다. 혈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연이나 학연, 직업, 학문, 취미 등 다양하다. 이 모두 서로 상부상조를 위해 연결하는 결속 수단인 것이다. 조직의 망이 촘촘할수록 그 관계는 끈끈하다.
사회적 관계는 친목이나 거래로 만난다. 신뢰의 끈으로 얽힌 관계는 공정한 처신이 생명이다. 거래가 끝나거나 명분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해체되는 특성이 있다. 연인관계처럼 한 눈 팔았다간 금방 깨지고 마는 것이다.
혈연적 관계는 일가붙이로 이어진다. 이해득실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처럼 책임과 의무를 저버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일시적인 불목은 있을 수 있지만 세대를 이어온 끄나풀은 놓기도 끊기도 어렵다.
가족의 정이란 것도 가족이기 때문에 끈끈한 것이 아니라 쌓인 정이 많기 때문에 질긴 것이다. 정이 없거나 살아본 적이 없다면, 그래서 서로 얽히지 않았다면 부모형제라 해도 남과 다를 게 없다. 이는 당대의 인연뿐만이 아니라 먼 선조 때부터 대를 이어온 인연이자 해결해야할 빚이기도 하다.
그 빚은 갚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금전적 빚은 갚으면 사라지지만 그 은혜나 고마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정이다. 지울 수 없는 정은 대를 이어 쌓이고 그것이 혈통 속에 스며있는 것이다.

대가 거듭할수록 유전적 관계는 멀어질 수 있다.
대를 거듭할수록 혈통의 순수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한때 과거 서양의 귀족이나 고려시대 왕족들은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동성동본 금혼 제도는 한 조상의 성씨에 같은 유전자의 결합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족보상의 혈통은 유지되지만 대가 길어질수록 유전적 순수성은 희석된다.
2000년 통계만 봐도 286개 성씨에 본관은 4,179개이다. 성은 남자의 성을 따르기 때문에 성씨만으로 정확한 유전자를 알 수 없다. 더구나 남자의 성만으로 금혼을 결정한 셈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후손 중 유전자 비율이 높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남자 이씨와 여자 박씨가 결혼하면 자녀의 성은 이씨지만 50%는 박씨라고 볼 수 있다. 이 자녀들이 남자 박씨와 여자 이씨의 자녀와 결혼하면 성은 다르지만 이씨 유전자 보유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본관이 4,000여 개가 넘는 현실에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대대로 먼 종중 제사일수록 가장 낮은 조상의 혈통을 지닌 종손이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한 겨레로서 유전적 혈통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 유산의 계승이다.

촌수는 숫자적 개념
촌수는 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호칭을 대신하기도 한다. 관계를 셈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한 마디(寸)를 기본으로 한다. 부모와 자식은 1촌, 형제자매는 2촌을 원칙으로 직계는 1촌, 방계는 2촌으로 계산한다(사실 유전적으로는 부모보다 형제 사이가 더 가깝다). 형제와 같이 항렬(行列)이 같은 친척들은 짝수인 2촌 간격으로 멀어지고, 나로서 위 항렬이나 아래 항렬의 친족은 홀수 간격으로 멀어진다.
촌수는 수명과 관계가 있다. 수명이 길수록 많은 자손을 낳아 대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손이 번창한 가문에서 항렬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단명한 가문에 차자가 양자로 입적한 경우 항렬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관계에서도 도리에 맞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득실만 따지다 보면 결국 생존의 문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인류 간의 냉혹한 전쟁도, 같은 국민끼리의 온갖 다툼도, 가족 친지 사이에 벌어지는 소송 사건도 모두 이해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해 미국 내 같은 국민끼리 일어나는 총기사건 사망자가 4만 명에 가깝다. 정을 고려하지 않는 촌수는 관습이나 법적 관한을 따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상속의 권한, 혈통
적통(嫡統), 대통(大統), 법통(法統)이란 말을 흔히 듣는다. 통(統)이란 핏줄이며 근본이고 권한이자 법이다. 이 통을 잇는 사람이 통솔의 권한을 갖는다. 혈통(血統)은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생물학적인 법적 권한이다. 유산 상속의 질서를 세우는 계통인 것이다.
과거 대를 잇는다는 말은 한 세대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 대신한다는 뜻이다. 혈연적 수직구조의 중심에서 유산을 상속 받는 것으로, 가문의 재산과 전통, 사회적 특권까지 물려받았다. 일방적으로 제사의 권한을 부여받는 제주(祭主)와 같다. 제주는 장손으로서 조상의 제사를 주재(主宰)하는 의무와 함께 유산을 상속받고 가문을 대표하였다.
족보에서 1대의 기간을 보통 30년으로 본다. 자식이 장가가서 아이를 갖는 때까지의 기간이다. 예전에 수명을 60살로 보면 손자가 아이를 갖는 때까지이다. 요즘은 수명이 길어지고 결혼 적령기도 늦어지고 있다.
족보는 혈족의 소속 명단으로 혈연 구성원을 인정받는 등록증서와 같았다. 과거에는 가문의 세를 배경으로 합리적으로 생존 권한을 인정받는 제도적 방식이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지방 사족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작성한 향안과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이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곁에 사람은 모이기 마련이다. 동반자가 되고 싶으면 같은 운명, 같은 처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공동운명체라면 해가 되는 인연보다 복이 되는 인연으로, 짐이 되는 인연보다 힘이 되는 인연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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